美데뷔 배두나 "韓관객과 공유하고파..설렜다"(인터뷰)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복제인간 손미451..배두나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2.12.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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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 ⓒ구혜정 기자 photonine@


1979년생 배두나. 어느덧 30대 중반에 이른 그녀는 아직도 '소녀'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묘한 배우다. 부러질 듯 가느다란 몸으로 느릿하게 움직이는 배두나에게선 시간마저 다른 속도로 흐르는 듯 하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톰 행크스, 할리 베리, 휴 그랜트, 휴고 위빙, 벤 위쇼, 짐 스케터스 등 내로라하는 할리우드의 스타들을 불러들인 워쇼스키 남매 감독도 그 낯선 기운을 감지한 게 틀림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영혼, 복제인간 '손미451' 캐릭터를 찾기 위해 먼저 배두나를 수소문했던 워쇼스키 남매 감독은 오디션을 마치고 말했다. "그녀는 다른 별에서 왔어(She's from another planet.)"


배두나의 독특한 에너지를 감지하는 눈에는 동양과 서양이 따로 없는 게 분명하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공기인형'에서 다름아닌 인형으로 그녀를 캐스팅했으니까.

배두나가 톰 선배, 할리 언니와 농담을 나누며 훈남 짐과 허물없는 친구가 된 것보다 뿌듯한 것이 영화 속 그녀의 존재감이다. 6개의 시공간이 전생, 현생, 후생으로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세상. "인생은 나의 것만이 아니며 우리의 삶은 연결돼 있다"는 영화의 주제가 배두나의 목소리로 전해진다. '손미451'은 영원한 로맨스의 주인공이자 순혈인간의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혁명의 불씨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영화의 영혼"이라는 톰 행크스의 칭찬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설레발치기 싫었다"는 배두나도 그 부분에 대한 뿌듯함만은 감추지 못했다. "그런 캐릭터를 맡았다는 걸 한국 관객과 기쁘게 공유하고 싶었다"면서.


-파트너 짐 스케터스는 집에 돌아갔나. 영화에서도 연인으로 나오는데 '그냥 사귀어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둘의 다정한 모습이 화제였다.

▶서울 구경 제대로 하고 갔다. 내가 가이드를 했다. 아주 친한 건 맞지만, 다른 배우랑도 허물없이 지낸다. 그런데 짐이 한국에 와서 파파라치샷은 아니고 '시민샷'에 자주 걸리다보니까 부각이 된 거다. 줄곧 커플로 나오다보니 영화를 촬영하며 많이 친해졌다.

-'손미451' 역이지만 1800년대 미국 남부 여인으로도 나오고, 멕시칸 여인으로도 나온다.

▶시대와 인종을 뛰어넘는 분장이었다. 특수 분장으로 얼굴을 다 뒤덮어야 했는데, 특히 멕시칸 여자 분장을 보면서는 '내가 늙으면 저렇게 되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는 제 얼굴을 10여년 보셨으니까 분장해도 알아보실 줄 알았는데, 못 알아보시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싸,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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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할리우드 진출인데, 외신도 그렇고 평이 무척 좋더라.

▶뿌듯하고 좋았다. 신선했나보다. 제 연기 톤이 그럴 수 있고 캐릭터 자체가 신선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쪽이 원래 칭찬을 많이 한다. 인색하지 않다.(웃음)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영혼'이라는 톰 행크스의 칭찬은 수사가 아니라 맞는 말 아닌가. 핵심적인 주제를 드러내는 캐릭터다.

▶그 부분이 이 영화를 하면서 가장 뿌듯한 지점이었다. 한국 영화를 하다가 일본 영화를 하고 미국 영화에 진출했다는 것과 전혀 상관 없이 역할 자체가 너무 좋고 매력적이라는 것, 그 역할을 따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쁘다. 내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영어나 여러 문제에서 제약이 있었는데도 중요한 역할이다보니 잘 보였던 것 같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다 찍고 지난 5월 '코리아'를 개봉했을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나도 안했다.

▶일찌감치 설레발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개봉 때까지 더 꽁꽁 숨겼다. '그런 영화 찍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나서서 막 알리고 하는 게 싫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더욱. 영화를 일단 보면 모든 관객이 아시지 않겠나. 꽁꽁 숨겨뒀다가 '서프라이즈'하고 보여드리고 싶었다. 기자회견 당시에 '자랑하고 싶었어요'라는 말이 많이 기사화됐는데, 사실은 제가 연기를 뛰어나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좋은 캐릭터를 맡았다는 걸 공유하고 싶었다. 숨기고 있던 시기에는 참 설렜다.(웃음)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쓴 부분이 어디였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캐릭터이지만 특히 저한테는 외국어로 해야 해서 더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우리나라 말 대사에서도 미묘한 늬앙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내 말이 아닌 말로 하려니까 힘들었다. 일본영화 '린다 린다 린다'를 처음 찍었을 때는 코믹한 분위기인 데다 한국 유학생 역이라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첫 미국 영화인데다 너무 진지하고 중요한 역할이었던 거다. 손미가 말하는 키워드를 나만의 방식으로 잘 전달되게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희망이었다. 특히 '손미451' 경우엔 감정선이 팍팍 요동치는데, 6가지 시대가 섞인 영화에서 그걸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데도 중점을 뒀다.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한국 사랑은 어땠나. 전작에서 비(정지훈)를 연이어 기용하는 등 꽤 인연이 깊다.

▶관심이 무척 많으시다. 한국 음식도 좋아하고 가라오케도 좋아하신다.(웃음) 정지훈씨와 이미 작업을 하셔서 이미 많은 걸 알고 계셨고, 덕분에 저는 편했다. 문화적으로 엄청나게 다르다는 걸 몰랐다. 예를 들면 우리는 자신감 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자신을 낮추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컷 마치고 '나 진짜 잘했지' 이런 말을 어떻게 하나. 그걸 예의로 배웠고 그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거기선 그게 안 먹힌다. 컷 마치고 쑥스러워 하면 '왜 저러나' 하고 스태프가 당황해한다. 워쇼스키 감독은 그 정서를 이해하더라. '이게 오리엔탈이야'라고 설명을 해 주면서.

-시간이 흐르면서는 '할리우드 스타일'에 적응이 되던가.

▶제가 그렇게 예의가 바른 줄 몰랐다. 나이가 조금만 많아도 선배고 또 어렵고 그런데, 거기선 다 1대1로 대하는 분위기였다. 제가 굉장히 '샤이'(shy)한 사람이더라. 적응해가긴 했지만 끝까지 적응이 안 된 게 볼에 뽀뽀하는 유럽식 인사였다. 앞에서 팔 벌리고 다가오면 그 순간부터 막 긴장이 된다. 마지막까지 그거 하나는 안 되더라.

- 톰 행크스, 할리 베리, 휴 그랜트 등등 쟁쟁한 스타들과 호흡했다.

▶거의 다 팬으로서 좋아한 분들이다. 영화를 보는 것 외에 만날 일이 없지 않을까 했던. 그 옆에서 메이크업 받고 영화를 같이 찍을 줄이야. 처음엔 그게 신선했는데 사실 촬영 들어가고 나선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영어에 스페인어에, 나 하나 건사해서 연기하는 데도 정신이 없었다. 통역도 없다시피 해서 감독이 뭐라고 하면 '한번만 더 천천히 해달라'고 하는 게 일이었으니까. '내가 이 사람들과 있다니' 하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막바지쯤에 되돌아보며 '어머, 내가 이 사람들이랑 찍고 있었네' 새삼 놀랍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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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에서는 말 그대로 공기인형이었고, 이번에는 복제인간 캐릭터다. 배두나라는 배우에게서 사람 아닌 사람의 느낌을 받는 건 세계 공통인 걸까.

▶돌아보면 그렇긴 하다. 하지만 제가 그 정도로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제가 그렇게 독특한 건 아닌데, 이상하다. 외모는 평범하게 생겼는데.

-그렇지 않다.

▶그런가. (웃음) 찍게된 건 다 사연이 있다. 고레에다 감독님 경우는 저의 팬이셨다고 말씀하셨었는데, 말을 잘 할 필요가 없는 역이라 캐스팅을 하셨다고 하더라. 손미는 감독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저의 첫 오디션 영상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고. '쉬즈 프롬 어나더 플래닛.(She's from another planet.)' 제가 그렇게 독특한 게 아닌데, 진짜 이상하다.

-오래 노력한 작품이 드디어 나왔다. 개봉을 앞둔 기분은 어떤가.

▶시원섭섭하다고 할까. 작년에는 '코리아' 촬영을 마치고 이틀 뒤에 베를린에 가서 '클라우드 아틀라스' 촬영을 하며 쉬지 않고 달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두 작품이 올해 개봉을 다 하니까 작년, 올해 그 시간이 이제 마무리가 된 것 같고 마음이 편하다. 이제 뭔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새로운 데 도전해야겠다는 생각도 드나. 강렬한 경험을 한 뒤라 마음에 차는 또 다른 걸 찾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새롭게 다짐하고 그런 건 전혀 없다. 얼마 전 임필성 감독님을 만났는데 '너 정말 충전중이구나, 기운이 없냐' 하는 말을 들었다. 예전엔 '재충전'이란 말이 웃겼다. 이제는 이해가 된다. 탁구 치고 새로운 데서 영화를 찍으며 저도 모르게 작년 한 해를 너무 전투태세로 보냈을 수 있다. 너무 센 자극을 받으면 그것에 면역이 될 수도 있지만 이제는 또 시간이 흘렀으니까 무뎌지지는 않은 것 같다. 이번 한 해에는 마음을 비우는 작업을 했다. 새 해가 오니까 이제 또 다시 해야지. 뭔가 저를 사로잡는 걸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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