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선덕여왕' 볼 때, 난 '전격Z작전' 본다"

김현록 기자 / 입력 : 2009.10.2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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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미드 '가십걸', '프리즌 브레이크', 'CSI'와 한국 드라마 '대장금', '겨울연가', '선덕여왕'


'꽃보다 남자'냐 '가십걸'이냐, '선덕여왕'이냐 '튜더스'냐, '아이리스'냐 '24시'냐….

TV 브라운관은 토종과 외제의 한판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격전장이다. 경쟁자 없던 국내 드라마 시장에 미국 드라마 '미드'가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이미 2000년대 초. 뒤이어 '중드'와 '일드'까지 속속 상륙하면서 접할 수 있는 드라마들의 색깔이 더욱 다양해졌다. 이제 드라마 팬들은 공중파와 케이블이 모자라 각종 DVD와 인터넷 사이트까지도 뒤져가며 각국의 작품들을 만난다. 드라마 팬들에게는 살맛나는 때다.


드라마의 세계에서 토종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MBC '선덕여왕', KBS 2TV '솔약국집 아들들', SBS '찬란한 유산' 등 대박 드라마의 시청률은 무려 40%를 웃돈다. 어림잡아도 2000만 시청자가 매일같이 TV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는 셈이다.

국산 드라마의 장점은 시청자들의 입맛에 꼭 맞춘 '한국의 정서'다. 우리 역사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의 성공기, 말썽 많은 한 지붕 네 아들의 좌충우돌 홈드라마, 북한을 상대로 첩보작전을 벌이는 요원들의 스릴러 등은 한국이 아니면 만들 수 없고, 한국 시청자가 아니면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인기높은 톱스타들이 벌이는 연기의 향연은 외국산 드라마에서는 도무지 맛볼 수 없는 한국 드라마만의 장점. 또 하나, 사시사철 시즌에 구애받지 않고 늘 여러 편의 드라마가 제작돼 방송된다는 특징이 있다.


가족과 사랑 등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가치를 흥미진진한 스토리 속에 담아낸 한국 드라마는 해외에서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대장금', '겨울연가' 등은 대표되는 '한류'는 '드라마 한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50% 넘는 시청률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대장금'은 동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까지 열풍을 일으키며 한국 알리기에 톡톡히 한 몫을 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한국 사람은 한국 드라마를 봐야 되는 것 아니겠느냐. 40% 시청률이 넘는 국민 드라마는 나라 전체의 이슈나 다름없다. '선덕여왕' 안 보면 대화가 안 되는 식이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국내 반응에 촉각을 기울인다. 국내 시청률에 따라 판매가가 달라진다"고 전했다.

미드는 이같은 한국 드라마 최고의 적이다. 시즌이 끝난 '섹스 앤 더 시티', '프렌즈'를 비롯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CSI', '프리즌 브레이크' 등이 일으킨 돌풍 속에서 미드는 이미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로스트', '히어로즈', '위기의 주부들', '프린지', '크리미널 마인드', '슈퍼 내추럴' 등 인기 미드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그 기세가 계속되고 있다.

OCN 관계자는 "'CSI'는 7∼8년 이상 된 킬러 콘텐츠지만 새롭게 시즌이 시작된 '프린지'나 '2009 전격Z작전'이 그와 비슷한 2%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며 "'미드'는 이미 돌풍을 넘어 대중화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미드는 영화를 연상시키는 큰 스케일,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한국 드라마와 정면 승부한다. 취향 따라 골라 볼 수 있는 셈이다. 대개 연속극의 형태인 한국 드라마와 달리 미드는 매 회 완성되는 이야기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 전개가 빠르고 몰입도가 높다. 또한 일반 시청자의 정서를 고려해 거부감 많은 이야기나 캐릭터를 만들기 어려운 한국 드라마에 비해 극단적인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 웬만한 미드 한 시즌의 제작비는 한국 드라마의 10배를 뛰어넘는다. 한 시즌이 끝나면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고 완성도 높은 새 시즌을 제작해 방송하기 때문에 일단 한 드라마의 팬이 되면 매 해 새로운 시즌을 기다리며 보게 만드는 중독성도 있다. 덕분에 'CSI'나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이름이나 얼굴이 생소한 미드 스타들이 닉네임까지 생길 만큼 많은 팬을 모으기도 한다.

미드에서 '토종'의 향취를 발견할 수도 있다. '히어로즈'의 안도 역 제임스 카이슨 리는 실제 한국계로, 극중에서도 서울 태생으로 이재혁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다. '2009 전격Z작전'에는 한국계 미녀배우 스미스 조가 조이 역으로 등장한다. 한국계인 릭윤과 성강도 얼굴을 비춘다. 다니엘 헤니는 최근 첫 방송을 시작한 CBS의 '쓰리 리버스'에서 주인공을 꿰차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니아 드라마로 치부되던 일드와 중드도 팬을 넓혀가고 있는 추세다. 한국 드라마와 색깔이 다른 일드는 한층 다양하고 독특한 소재와 이야기로 사랑받고 있고, '결혼 못하는 남자',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 등 국내에서의 리메이크도 이어지고 있다. '꽃보다 남자'의 대만판인 '유성화원', 한국에서 드라마 제작이 준비중인 '장난스런 키스' 등을 앞세운 일본만화 원작의 대만 로맨틱 코미디도 국내에서 팬들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토종 드라마들과 해외 드라마들의 대결에 대해 방송 관계자들은 '대립이 아닌 공존'이라는 설명을 내놓기도 한다. 토종 드라마와 미드·일드는 조화롭게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경쟁은 서로에게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MBC 드라마국 관계자는 "국내 드라마가 TV 주 시청층인 40∼50대의 입맛에 맞춘 작품을 연달아 내놓을 때 20∼30대 시청자들은 그 대안을 미드에서 찾았다. 국산 드라마와 해외 드라마는 다른 특징과 타깃을 갖고 경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드라마 관계자는 "미드가 드라마 시청자들을 빼앗아갔다고 하지만 새로운 시청층을 창조했다고도 볼 수 있다"며 "시청자들은 미드를 보고 국내 드라마에서 느끼던 허기를 채우고, 국내 드라마 제작자들은 미드를 보고 자극받아 한층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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