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약속은 '강남'에서만 하나

['청호' 이진성의 세상 꼬집기②]

탤런트 이진성 / 입력 : 2009.08.03 08:51 / 조회 : 5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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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청담동 호루라기 이진성. 강남이라고 하면 사실 나의 보금자리이자 아지트다. 청담동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기는커녕 아무렇게나 풀이 자라던 시절부터 이곳에서 35년을 살아왔다. 그런 이곳 '강남'에 대해, 나 조금 할 말 있다.


왜 집합은 '강남'에서만 하나

"그럼 강남에서 보자."

약속장소를 잡을 때 제일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우리 집 가깝다고 배려해주는 건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는 곳도 상관없다. 그냥 쉽게 '강남에서 만나' 하는 식이다. 심지어 의정부에서 축구하던 사람들도 약속은 강남에서 잡는다. 차를 타고 아무리 부웅 달려와도 1시간은 넘게 걸릴 곳 아닌가.


친구들과의 가벼운 만남이나 모임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소개팅, 미팅을 해도 만만한 게 강남이다. '강남에서 봐' 이게 제법 괜찮은 사람들의 집합코드가 된 느낌이랄까?

요즘엔 웬만한 가게는 죄다 랜드마크가 됐다. '모이는 데가 강남 어디라고?' 하면 '○○○ 옆이야.', '△△△△ 건너 두번째' 골목'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 그걸 언제 다 외우고 사시는지.

그런데 월화수목금 열심히 일하시는 직장인들에게 한 번 묻고 싶다. 닷새 동안 회사 다니며 쓴 돈이랑 토요일·일요일 강남 나와 쓴 돈이랑 어느 쪽이 많은지. 주말 하루 이틀 쓴 돈이 아마 만만치 않으실 거다.

사실 이 동네 참 비싸다. 땅값 얘기만은 아니다. 뭐든 강남에 들어오면 값이 훌쩍 뛴다. 사람 만나 뭐 좀 하려고 하면 몇 만 원씩 훌쩍 들어가는 게 이곳이다. 슈퍼에서 1100원, 1200원 하는 소주가 한 병에 6000원도, 7000원도 한다.

낮에 만나 1인당 2만원 왔다갔다 하는 브런치 먹고, 자리 옮겨 차 마시고, 왔다갔다 하면서 많게는 5000원까지 하는 발레 파킹 요금 내고 하다보면 오후 3시도 되기 전에 10만원 가까이가 휙 나간다. 이거 본격적인 게임은 시작도 안했는데, 잽만 날리다 지갑이 텅 비는 식이다.

물론 장점은 있다. 특히 차 가진 사람들에게 그렇다. 유일하게 서울시내에서 강남이 바둑판이다 보니 차 몰고 만나기 좋다는 편의성을 빼놓을 수 없다. 발레 파킹이 보편적이니 주차 걱정도 조금 덜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강남의 장점은 이리저리 눈요기하기가 좋다는 거다. 이른바 '물 좋은' 동네다. 반짝이는 외제차 많고, 예쁜 사람들 많고, 예쁜 가게도 많다. 빼놓을 뻔 했는데 대개 서비스도 괜찮다. 비싼데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나.

마치 맞선 볼 때 별거 없더라도 근사한 호텔이 아니면 안되는 것처럼, 사람들의 만남도 실상 별 거 없더라도 폼 나는 강남이 아니면 안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왠지 그 곳을 돌아다니는 '나'는 아무데나 다니는 '남'들보다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면 강남은 스쳐서 들렀다 가기 좋은 동네가 아닐까. 오늘 만나 신나게 불타지만 식는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약 뭔가를 이루려고 한다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만큼 어렵고 까다롭다. 진짜 실력가와 허울 좋은 사기꾼까지,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으니.

사랑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친구라 해도 오래 두고 깊게 만나기가 쉽지 않은 이 곳이다. 겉모습과 느낌으로 사람에 대한 판단이 끝나버리곤 하는 이 불타는 동네에서 진심을 전하기란 쉽지 않다. 정말 쉽지가 않다.

<이진성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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