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시걸, 웃음거리 전락한 마초의 제왕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입력 : 2009.02.1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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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의 진지함은 종종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는데, 이처럼 웃음거리가 되는 마초 배우들 중 제왕을 고르라면 단연 스티븐 시걸이다. 화내거나 즐거우나 뭔가 곰곰이 생각하거나 언제나 그대로인 ‘스티븐 시걸 표정 30종 세트’를 비롯해 영화 속에서 총 한 방으로 헬리콥터를 박살내는 사진에 이르기까지, 스티븐 시걸의 카리스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려왔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비호감’에 가까워지다 보니 사실상 주류 영화계로 비껴난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출신으로 <인크레더블 헐크>로 할리우드 입성한 루이 레테리에 감독의 경우 과거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 묻는 질문에 “스티븐 시걸이나 장 클로드 반담과 하는 영화만 아니면 오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홍콩이나 유럽의 많은 감독들이 처음 할리우드에 발을 내딛으며 그들과 첫 작업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음을 빗댄 말이었다.


오우삼과 서극과 임영동은 장 클로드 반담과, 정소동과 양보지는 스티븐 시걸과 함께 첫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었었다. 물론 그 중 성공작은 하나도 없다. 이처럼 시걸은 장 클로드 반담과 종종 비교됐는데 실제 시걸은 반담보다 거의 10살 이상 나이가 더 많다(시걸은 51년생, 반담은 60년생). 환갑이 다 된 나이에다 성룡보다도 3살 많으니 현재 세계영화계에서 주연급 배우로서 여전히 액션 연기를 펼치는 최고령 배우가 바로 스티븐 시걸인 셈이다.

그래도 왕년의 스티븐 시걸은 꽤 매력적인 배우였다. <형사 니코>(1988)로 데뷔해 <복수무정>(1990) 등 일련의 B급 형사 액션영화를 통해 스타로 떠올랐었다. 무명 시절의 샤론 스톤이 출연한 <형사 니코>는 이후 <도망자>(1993)를 만들게 되는 앤드류 데이비스 감독의 수작이었다. 시걸이 일본으로 건너가 가라테를 배운 전직 CIA 요원으로 나오는데 그건 이후 그의 모든 요소가 집약된 캐릭터였다. 웬만해선 악당들보다 훨씬 덩치도 커서 듬직했고, 이기고 있어도 언제나 언짢은 표정으로 일관하는 그의 모습은 묘한 카리스마를 풍겼다.

범죄자들의 관절을 사정없이 꺾어 쓰러트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더티 해리> 시리즈의 장신 형사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가라테를 배우면 저렇게 될 지도 모르겠다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다. 그만큼 파괴력 넘치는 시걸의 액션은 꽤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최근 흥행작 <테이큰>같은 작품이 보여주는 액션의 묘미(크고 화려한 동작 없이 간결한 일격필살로 상대를 제압하는)는 저 멀리 스티븐 시걸의 영화로부터 기인한다 해도 틀리지 않다.


‘무술하는 백인 경찰’의 원조격이나 다름없던 스티븐 시걸은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언더 씨즈>(1992) 시리즈와 <파이널 디씨전>(1996) 등을 통해 대작 블록버스터에 안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작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고 다시 <엑시트 운즈>(2001. 사진), <아웃 포 킬>(2003) 등 전형적인 ‘시걸표 B급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었다.

그런데 이후부터 최근까지 사실상 여전히 많은 작품들에 출연하고 있지만(국내에서는 이제 거의 개봉하지 않고 바로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 이제는 B급이라고도 부르기 힘든 C급, D급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벨리 오브 비스트>(2003)에서 대역을 써서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발차기를 구사하거나 한국영화 <클레멘타인>(2004)에 출연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팬들까지 떠나게 했다. 지금도 2년에 한 편 꼴로 액션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그 만듦새는 늘 제자리걸음이다. 스티븐 시걸은 마초 배우도 힘이 아니라 머리로 살아남아야 함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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