팸플릿으로 본 2008 화제작 10편 "역시 셌다"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8.12.1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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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는 기억에 남고, '놈놈놈'은 재미있었고, '다크나이트'는 섬뜩했으며, '아이언맨'은 대단했다. '우생순'은 감동스러웠고, '핸콕'은 가공스러웠으며, '테이큰'은 뜻밖이었다. '인디아나 존스4'는 좀 실망이었고, '미인도'는 숨가빴으며, '맘마미아'는 흥겨웠다.

박스오피스, 화제, 뉴스 여러 면에서 이들 10편의 국내외 영화는 올해를 대표할 만했다. 그러나 이는 개봉 이후의 평가이고, 개봉을 초조히 기다리며 이들이 낸 홍보용 A4크기 팸플릿에는 설렘과 불안이 동시에 직조돼있다. 영화마케터들의 궁리와 고심이 집약된 팸플릿을 통해 2008년 화제작 10편을 추억해봤다.


맘마미아

9월3일 개봉한 '맘마미아'는 총 448만명을 동원(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기준), 올 개봉한 외화 중 2위에 올랐으니 화제작 10편에 들어가도 뭐라 그럴 사람 없다. '머니 머니 머니' '맘마 미아' '허니허니' 등 아바의 노래들이 그런 절절한 내용이었는지를 영화 보고 안 팬들도 꽤 많았다. 하긴 '맘마 미아'가 "어머나"라는 뜻인 줄은 이번 기회에 알았으니까.

젊은 여주인공 아만다 시프리드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조신하게 포즈를 잡은 '맘마미아' 팸플릿은 일단 '전세계가 잊지 못할 결혼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아바보다는 영화내용에 방점을 찍었다. 영화는 448만명이 기억하는 그대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만다 시프리드의 결혼식을 앞두고 세 아버지 후보(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스텔란 스카스가드)를 초청한다는 내용이다.


팸플릿에선 화려한 등장인물의 한 줄 평이 재미있다. 메릴 스트립이 맡은 여주인공 도나에 대해서는 '나도 한땐 잘나갔어..화려한 연애경력의 엄마',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샘은 '추정아빠 후보 1번', 아만다 시프리드가 맡은 소피는 '대체 누가 아빤거야'. '전세계 13개국 박스오피스 1위' 등등은 이런 팸플릿에선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나 애교로 넘어가자.

다크나이트

흥행성적으로만 보면 406만명으로 올 개봉 외화 중 6위에 머문 작품이지만 '다크나이트'는 고 히스 레저의 열연 하나만으로도 올 화제작 톱10에 들어갈 만하다. 요즘 외국 영화시상식에선 고 히스 레저가 하루 걸러 남우조연상에 추서되고 있다. 그만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그가 맡은 조커 역이 빛났다는 얘기다.

팸플릿 역시 조커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배트맨, 최강의 적을 만나다'. 물론 크리스찬 베일의 배트맨과 고 히스 레저의 조커의 맞대결을 암시한 문구다. '영화사상 최악의 악당 1위' '이 도시에 정의는 죽었다. 배트맨을 죽여라' '배트맨 같은 영웅 덕에 세상이 안전해졌다 생각하나?' 등 온통 조커 입장에서 영화를 알렸다. 하긴 영화마케터들도 미리 영화를 보고 조커에 꽂혔을 테니까.

핸콕/아이언맨

두 작품 모두 까칠한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의 경우엔 지난 4월30일 개봉, 전국관객 431만명을 동원하며 3위에 오르는 등 흥행성적도 괜찮았다. 윌 스미스가 음주비행 슈퍼히어로로 나온 '핸콕'도 272만명(8위)으로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핸콕'은 윌 스미스를 전면에 내세우며 팸플릿 첫 장을 이렇게 장식했다. '한국에 까칠한 영웅이 떴다'. 그리고 또 이렇게 덧붙였다. '7월초 이런 영웅 처음이다'. 그러면서 '역사상 최악의 사고뭉치 슈퍼히어로 핸콕' '무적의 영웅 핸콕보다 까칠한 단 한 명의 천적 메리' 등 슈퍼영웅의 비(非) 교과서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한마디로 '제멋대로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인 셈.

앞서 개봉한 '아이언맨' 역시 기존 슈퍼히어로와 차별성을 강조했다. '영웅의 패러다임을 바꿀 하이테크 슈퍼히어로의 탄생' '억만장자 무기상이자 천재 과학자인 토니 스타크가 개발한 하이테크 수트만 입으면 누구나 아이언맨이 될 수 있다'..예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 닳고 닳은 초절정 홍보문구도 기억해두자. '전 세계를 흥분시킬 2008년 첫 블록버스터'. 과연 이 자신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테이큰

올해 외화수입업자의 드림이자 로망은 단연 리암 니슨의 '테이큰'이었다. 지명도도 없는 이 작품은 '아주 싼 값'에 들여와 입소문을 타고 237만명(9위)이나 불러모았으니까. 10위권 외화 중 가장 적은 스크린수(254개)에서 개봉, 이런 성적을 거뒀다는 건 그만큼 첫 주 영화 본 관객들의 리얼 영화평이 대단했다는 방증이다.

팸플릿은 스릴러에 심취한 국내 팬들을 확실히 겨냥, '세븐데이즈, 추격자를 잇는 2008년 최고의 추격 스릴러'를 메인으로 삼았다. 부모 입장에선 아주 보기 힘든 유괴스릴러답게 '사상 최대의 실수! 그녀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리암 니슨, 매기 그레이스, 팜케 얀센! 할리우드를 흥분시킨 초호화 캐스팅'이라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문구가 오히려 애교스럽다.

인디아나 존스4

오래 기다렸다. 어린 시절, 인디아나 존스 박스는 꿈의 탐험대장이었으니까. 그러나 남은 건 기다림과 허탈함뿐. 해리슨 포드는 나이 들었고, 샤이아 라보프는 약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인디아나 존스'라는 이름은 셌다. 지난 5월22일 개봉한 이 작품은 413만명을 불러모으며 올 개봉한 외화 중 4위에 당당히 올랐다.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이름값을 했다.

팸플릿 역시 19년만에 귀환한 '인디아나 존스'에 초점을 맞췄다. '모험은 계속된다!'와 '액션 어드벤처의 전설,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의 귀환'이라는 타이틀로 스타급 감독과 제작자의 유명세에 기대는 한편 '키워드로 알아보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가이드'를 통해 작품의 역사성도 은근히 과시했다. 물론 '최고가 아니면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가 기다린 이 시대의 히어로' 같은 최상급 과장 표현 역시 멈추지 않았다.

미인도

영화 개봉 전 투자사 예당엔터테인먼트는 심하게 앓는 소리를 했다. "우리 이 영화 안되면 큰 일 난다"고. 이런 바람이 통한 걸까, 아니면 김민선의 화끈한 누드와 최근 '남장 여자' 신윤복 열풍 덕분일까. 11월13일 개봉한 영화는 18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올 개봉한 한국영화 중 7위까지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신윤복(김민선)을 사랑한 김홍도(김영호)라는 영화 컨셉트답게 팸플릿의 메인 테마 역시 '센세이션 조선멜로'로 잡았다. 그리고 아예 작정하고 '센세이션'을 파고들었다. '신윤복, 남자인가 여자인가' '춘화인가 예술인가' '욕망인가 사랑인가' 등등. 여기에 '붓끝으로 전하는 조선 최초의 에로티시즘' '춘화 완벽재현을 위한 고군분투'까지 겹쳐 '미인도' 팸플릿은 연분홍빛 냄새가 폴폴 풍겨난다. 물론 김민선의 벗은 뒤태를 정면에 노출시킨 채.

놈놈놈

김지운 감독의 '좋은놈,나쁜놈,이상한놈'은 어쩌면 한국영화가 신나게 돈을 퍼붓고 톱스타(송강호 이병헌 정우성)를 데리고 해외로케에서 마음놓고 찍은, 거의 마지막 작품이 아닐까 싶다. 668만명의 관객 동원을 기록, 올 개봉 국내외영화 통틀어 전체 1위에 오른 그 명성만큼이나 '놈놈놈'은 칸영화제 초청, 패러디 등장 등 온갖 화제를 몰고 다닌 살아있는 한국영화 영웅이었다.

관객 동원에 어느 정도 성공하며 기세를 높여가던 당시 나온 '놈놈놈' 팸플릿에는 이같은 자신감이 충만해 있다. '한국영화의 자부심, 놈놈놈'을 비롯해 '웨스턴의 본고장 미국 극장 개봉 확정..톡쏘는 매운맛, 김치웨스턴 놈놈놈' '3일만에 100만, 4일만에 200만 돌파..파죽지세 흥행질주!' 등등. '평단과 기자, 만장일치! 놈놈놈' 정도는 약과이고, "영화가 미쳤어요!"(김혜수) 같은 독한 멘트도 수두룩했다. '놈놈놈'은 '추격자'와 함께 2008년 한국영화의 한 전설로 남았다.

우생순

1월10일 개봉전에 나온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팸플릿에는 일종의 비장감이 베어있다. '그녀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문구를 내세우고, 이제 막 땀 흘린 '핸드볼선수' 김정은과 문소리의 가열찬 눈빛이 정면을 향해 있다. 그리고 국민감정에 열렬히 호소했다. '대한민국을 울리고 전세계를 감동시킨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을 기억하십니까?'라고.

그러면서 팸플릿은 임순례 감독의 멘트를 통해 영화의 진정성을 부각시켰다. "마지막 한 방울의 땀과 호흡까지 쏟아내며 최선을 다한 자에게 진정한 승리가 찾아온다는 진실을 말하고 싶다." 이런 비장과 진정성에 힘입어 영화는 신년 벽두부터 대박을 터뜨렸고 결국 404만명을 동원해 올 개봉 한국영화 중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다.

추격자

그래, 우리에겐 스릴러가 있었어. 2월14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우생순'의 흥행바통을 전혀 다른 촉감으로 이어받은 걸작이다. 507만명(2위)이라는 흥행스코어는 별개로 하더라도, 영화 보는 중간 터져나온 여러 여성 관객의 비명(고백컨대 기자도 그랬다)은 이 영화의 화제성과 무게감을 입증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안돼!"(살인마 하정우가 서영희가 숨어있던 개미슈퍼에 되돌아가던 그때..왜 하필 그때 담배가 떨어졌을까)

팸플릿은 영화의 밀도에 비하면 오히려 평범하고 밋밋하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희대의 살인마..놈을 잡은 건 경찰도 검찰도 아니었다..그날밤 놈을 쫓던 단 한 명의 추격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올 영화 명대사 중 하나로 꼽을 만한 '4885..너지? 넌 잡히면 죽는다', '안 팔았어요. 죽였어요..근데 그 여잔 아직 살아있을걸요?' 같은 주옥같은 문구가 빼곡하다. 그러나 압권은 역시 반창고 붙인 퀭한 눈빛의 하정우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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