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청운, 홍콩영화계 최후의 터프가이

[형석-성철의 에로&마초]

주성철 / 입력 : 2008.09.08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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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 팬으로서 최근 여러 다양한 홍콩영화들이 개봉하는 분위기라 무척 반갑다. 오우삼의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 같은 영화들이야 워낙 대작이라 그렇다 치지만, 엽위신의 '도화선'에 이어 진목승의 '남아본색', 두기봉과 위가휘의 '매드 디텍티브', 그리고 또 진목승의 신작 '커넥트'까지 개봉 일정이 잡혀 있으니 오랜 갈증을 느껴온 팬들로서는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중에서 '홍콩영화계 최고의 인상파' 유청운이 주연을 맡은 '매드 디텍티브'는 감히 걸작이다. 이미 홍콩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한자 제목이 '신탐'(神探), 그러니까 '신들린 형사' 정도 되는데 다중인격이라는 소재를 이처럼 흥미롭게 풀어낸 영화는 정말 보지 못했다.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으로 뛰어든 그는 다른 사람의 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인격을 꿰뚫어보는 독특한 방식으로 사건을 풀어간다.


무엇보다 '매드 디텍티브'는 유청운 특유의 거침없는 저돌성, 사소한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터프한 매력이 빛나는 영화다. 사실 국내에는 여명과 함께 출연한 '더 히어로'(1998) 외에 각각 장국영과 이연걸이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색정남녀'(1996), '흑협'(1996) 정도만이 소개된 정도라 그를 설명하기 난감하기도 하지만, 한 번 보면 누구나 잊기 힘든 강렬한 표정과 카리스마로 홍콩영화계를 지켜왔다.

국내 극장가에서 홍콩영화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던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그가 누아르와 코미디 장르를 오가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는 사실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매드 디텍티브'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상관에게 자신의 귀를 잘라 선물하는 충격적인 모습은 그가 보여준 카리스마의 극히 일부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이번 주말까지 열리는 서울충무로국제영화에서 '매드 디텍티브'뿐만 아니라 상대배우 양조위의 매력까지 '잡아먹었던' '암화'(1998)가 소개된다. 더불어 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그는 지난 주말 직접 충무로영화제를 방문해 거침없는 무대인사로 팬들을 넉 다운시켰다 한다.


아마도 '외팔이 검객'같은 고전 홍콩무협영화의 팬들이라면 '더 히어로'에서 두 다리를 잃고서 복수에 나서는 그의 모습에 넋이 나갈 것이고, '매드 디텍티브'를 통해 그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라면 그가 10여 년 전 비슷한 한자 제목의 '무미신탐'(1995)에 출연해 악당보다 더 험상궂은 형사를 연기한 그 모습에 반하게 될 것이다. 머리에 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이후 종종 예고 없이 잠들어 버리는 이상한 증세에 시달리게 되는데, 라스트 액션신의 그 위험천만한 순간에도 잠이 들어 버린다. 클라이맥스에서 그만 잠들어 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특히 충무로영화제 상영작인 '암화'는 '매드 디텍티브'의 라스트와 마찬가지로 오슨 웰즈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연상시키는 거울방에서의 액션신으로 관객들의 숨을 멎게 만든다. 그건 뭐, 유청운의 존재가 아니라도 언제나 기적적인 명장면을 만들어내는 '액션의 달인' 두기봉의 작품이라는 관점에서도 관객의 심장을 쥐었다 놓았다 한다.

게다가 '암화'에서 갓 출소한 그는 빡빡머리에다 심지어 꽃 남방을 걸치고 있다. 아마도 그런 '간지'를 낼 수 있는 터프가이는 아시아에서도 극히 드물 것 같다. 사실 이상 소개한 영화들은 극장 개봉을 못 했지만 비디오 숍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빌려볼 수 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홍콩영화계의 침체와 더불어 우리는 그렇게 홍콩영화계 최후의 터프가이를 오래도록 모르고 살았던 셈이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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