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늘 '넥스트'가 '베스트'였으면"(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08.04.24 09:48 / 조회 : 2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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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근 qwe123@>


바야흐로 '하정우 시대'이다. 500만 관객을 동원한 '추격자'가 제61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용서받지 못한 자'로 인연을 맺은 윤종빈 감독과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비스티 보이즈'가 3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멀지 않아 '칸의 여인' 전도연과 함께 한 '멋진 하루'로 관객과 만난다.

불과 1년 전까지 충무로의 기대주였던 그가 벌써 가장 주목받는 배우로 떠올랐다.

하정우의 행보는 처음부터 남달랐다. 누군가의 아들로 불렸던 그였지만 어느샌가 김기덕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더니 안방극장을 통해 '훈남'으로 거듭났다. 그 자리에서 안주했다면 '스타'가 될 수도 있었지만 하정우는 '배우'의 길을 택했다.

하정우는 낯선 뉴욕에서 이방인을 연기하더니 어느샌가 불온한 남자들을 그려가고 있다.

'추격자'에서 "지랄하고 있네"라며 망치를 휘둘렀던 그는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2년간 살을 섞은 여자에게서도 돈을 뜯어내는 뻔뻔한 남자가 됐다.

하정우가 걷고 있는 길의 종착점은 과연 어디쯤일까? 이 욕심 많은 남자는 어디쯤에서 만족할 수 있을까?

-아직 개봉하지는 않았지만 '멋진 하루'에 맡은 뻔뻔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남자와 '비스티 보이즈'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그런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멋진 하루'는 후반으로 갈수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라면 '비스티 보이즈'는 후반으로 갈수록 정말 '나쁜 놈'이다. 그런 점에서 둘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추격자'와 '비스티 보이즈'를 연이어 찍었다. 너무 상반된 역이라 연기 몰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3주 가량 촬영이 겹쳤다. 둘 다 밤 촬영이 많아서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7개월 정도 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드라마 '히트' 이후 쉽게 갈 수도 있었을텐데 어려운 길만 골라서 택하는 것 같다.

▶ 기본적으로 성향이 금방 싫증을 낸다. '히트'를 통해 '훈남' 이미지를 얻었는데 계속해서 그런 인물이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건 내 모습도 아닐 뿐더러 곧바로 싫증이 나더라.

-'비스티 보이즈'에서는 뻔뻔하면서도 사랑을 얻어내는 소위 '선수'를 연기했다. 개인 하정우도 선수 기질이 있나.

▶ 나는 그런 기질은 없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숫기도 없고. 금방 티가 나기 때문에 완벽한 프로가 될 수 없다.

-'비스티 보이즈' 촬영하면서 "더 이상 못 찍겠다"고 윤종빈 감독에게 요청을 하기도 했다던데.

▶ 스케줄 때문에 투정을 부린 적이 있다. 왜냐하면 '추격자'에서 '개미슈퍼' 장면과 '비스티 보이즈'에서 "5000만원 정도로 잘 할께"라고 여자에게 떼쓰는 장면 촬영 일정이 겹쳤다. 그 감정이 너무 다른데 겹쳐서 할 경우 둘 다 '베스트'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비스티 보이즈' 촬영 일정을 일주일 정도 조정해줬다.

-'비스티 보이즈'를 보면 윤종빈 감독의 하정우에 대한 사랑이 녹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서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감독님과 서로 알아가야 하는 시간이 필요가 없는 사이니깐. 윤종빈 감독과 '비스티 보이즈'에 관해 줄곧 이야기해왔고, 또 나를 모델로 처음부터 썼기에 내 말투라든지 여러가지 내 모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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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근 qwe123@>


-충무로에서 알차게 준비 중인 작품들 중 상당수가 현재 하정우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차기작 결정을 내린 것도 있고. 일약 충무로의 기대주가 됐는데.

▶ 그래서 고민이 더 많아졌다. 좀 더 여유를 갖고 한 발자욱 물러나서 나 스스로를 컨트롤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숨소리까지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추격자'가 흥행 행진을 이어갈 때 계속 '비스티 보이즈'와 '멋진 하루'를 찍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대 인사를 이어갔다면 자칫 들떠있었을지도 모른다.

-출연작들마다 개런티의 간극이 크다. 어떤 작품은 제 값을 받고 어떤 작품은 상당히 적게 받는데.

▶ 제작비에 맞춰서 개런티를 받는게 현실적이며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첫번째이고 개런티가 두번째이기 때문이다.

-'추격자'와 '비스티 보이즈'에서 맡은 역은 어찌보면 여성 관객들이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 '추격자' 만큼의 영화적인 재미를 '비스티 보이즈'에서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 난 관객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주고 싶었다. '비스티 보이즈'는 다큐멘터리 같은 분위기는 인물에 더 바짝 다가가기 때문에 여자 관객들에게 '쇼크'를 줄 것이고, 그것 또한 즐길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부담이나 욕심은 없나.

▶ 이미지에 대한 욕심, 물론 많다. 빅마마의 '배반'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그 속에서 굉장히 절규를 한다. 찍으면서도 '아, 내가 이렇게 절규하는 이미지를 영화에서 써먹여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내 이미지는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치 백지처럼. 그래서 늘 대표작은 늘 '넥스트'였으면 좋겠고, '넥스트'가 '베스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추격자'와 '비스티 보이즈', 막 촬영을 마친 '멋진 하루'까지 하정우가 맡은 역은 어딘지 모르게 유아적이다. 그 속에 '소년 하정우'가 담겨 있는 것 같은데.

▶ 정확하게 봤다. 철없는, 사회성이 결여된 인물. 그런 내 속의 모습들을 영화 속에서 앞으로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인물이다.

-하정우의 다음 작품이 늘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

▶ 그렇다. 관객 입장에서 그 사람이 왜 저렇게 하는지 궁금해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어디로 튈 지 모르니깐. 나도 관객 입장에서 그런 배우들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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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근 qwe123@>


-얼마전 오랫동안 함께 한 매니저가 그만 둔다고 하자 '내가 더 잘할 테니 계속 하자'고 이야기했다던데. 인간 관계를 그만큼 소중히 하나.

▶ 인간 관계, 의리, 이런 게 전부인 것 같다. 배우로서 어떤 순간부터 각박하게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보람 같은 것을 나와 관계된 사람과 같이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어떤 것보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학창 시절부터 늘 누군가에게 경쟁 의식을 불태워 왔다던데. 지금 배우 하정우에게도 긴장을 주는 상대가 있나.

▶ 물론이다. 얼마 전에 유명을 달리한 히스 레저나 오다기리죠 같은 배우들. 나와 나이도 비슷한데 어떻게 그렇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히스 레저와 오다기리죠, 둘 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절묘하게 오고 가는 배우들이다. 또한 30대로 접어든 배우들이기도 하고. 하정우와도 닮아있는데.

▶ 그런 삶, 배우로서 고민하는 30대, 그런 순간이 나와 비슷하고 나 역시 30대를 고민하고 있다.

-'두번째 사랑'으로 미국영화계를 경험했다. 또 다른 미국작품 출연을 논의하고 있는게 있나.

▶ 이야기하고 있는게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라 뭐라 말할수가 없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LA 스튜디오 영화라기보다 뉴욕 영화가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액션보다는 '두번째 사랑'처럼 드라마를 하게 될 것 같다. 하고 싶기도 하고.

길게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 여기에서 더 충실하면서 점차 범위를 넓히다 보면 40~50대에 더 큰 기회를 얻지 않겠나. 지금은 싱글A, 더블A에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히트' 이후 한동안 드라마 출연 계획이 없는데.

▶ 한다면 사극을 하고 싶다. '주몽'이나 '대장금'처럼 50회나 60회를 하는 국민드라마. 한 6개월 정도 다른 인물로 사는 게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하정우와 사극이라니 안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어울릴 것 같다. '멋진 하루'에서 호흡을 맞춘 전도연은 어땠나.

▶ 매 순간마다 영감을 받았다. 회식에서 술을 마실 때도 어느 순간 스태프와 함께 마시자며 나를 이끌기도 했다. 작은 것 하나하나부터 배울 수 있는 게 너무 많은 선배이다.

-좋은 배우들과 좋은 연기를 펼쳤지만 아직까지 '원톱'은 없었다. 언제쯤 원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 정말 그런 기회가 왔을 때, 그 때 내가 준비가 돼 있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나는 그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하정우에게 배우란 무엇인가.

▶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예술가이며, 또한 감독의 도구. 하지만 내게 있어 배우란 의미를 정의할 수도 없고, 정립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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