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제가 왜이렇게 힘들게 사냐구요?"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08.04.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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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면 어디서나 예쁨 받는다. 실력이 받쳐준다면 금상첨화. 거기에 타고난 외모까지 훌륭하다면 두말할 필요가 있으랴. 가수 비 혹은 배우 정지훈은 이 당연한 진실을 일깨우는 스타다. 연습생 시절 지독한 연습벌레로 유명했던 그는 데뷔 후에도 화려한 톱스타이면서도 금욕에 가깝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으로 명성을 떨쳤다.

할리우드라고 그가 변했겠나.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스피드 레이서'는 'Rain'이란 이름으로 촬영한 그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 주조연급인 레이서 태조 토고 칸 역할을 맡은 그는 역시나 지독한 노력파 근성을 떨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다음달 8일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


개봉을 앞둔 비에게선 전매특허 쑥스런 미소에서조차 자신감이 묻어났다.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은 그를 더욱 당당하게 만들었다. 이미 워쇼스키 형제의 새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발탁된 그는 흥행은 신경쓰지 않는다 했지만 모두가 궁금해한다. 이런 그를 세계팬들도 사랑해줄까? 단 두 마디만 하련다. 열심히 하면 어디서나 예쁨받는다고. 할리우드도, 워쇼스키도 이런 그에게 이미 반했다고.

다음은 비와의 일문일답.

-할리우드에서 한국과의 차이를 실감했나.


▶시스템의 차이라기보다는 규모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싼 자동차를 폭파하는 신을 찍는다 하면 옆예 예비 폭파용 자동차들이 놓여있다. 비싼 장비가 필요하면 우리는 하루 빌려서 어떻게든 다 찍으려고 하는데 거긴 크랭크업 날짜까지 모든 장비를 스튜디오에 완비해두는 식이다.

절대 촉박하게 촬영하지 않는데다 크랭크업 날짜도 웬만하면 어기지 않는다. 하루 어길 때마다 들어가는 돈이 엄청나니까. 밤샘촬영도 없다. 절대적으로 감독 위주, 배우 위주다. 엄격한 규율 아래 움직이지만 감독에게 자기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자율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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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어땠나.

▶발음이 안 좋아서 여러번에 나눠서 찍겠구나, 절대 NG를 내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저는 NG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다. 영어대사보다도 그린 스크린 아래에서 연기하는 게 흥미로웠다. 영화 장면 중에 헬멧과 핸들, 레이싱복 말고는 전부가 다 CG라고 보면 된다. 그것도 CG팀 8명 정도가 동시에 붙어서 현장에서 배경을 산으로 바꿨다 설원으로 바꿨다 한다.

순발력이 많이 요구되는데 첫날에는 완전히 헤맸다. 떨리는 핸들을 잡으면 온몸이 다 떨릴 정도니까. 하지만 하루 지나니까 쉽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찍은 장면들이 이렇게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영어 대사가 무척 능숙하다.

▶영어는 습관이라는데. '스피드 레이서' 찍을 때 많이 늘었다가 한국에 오면서 다시 서툴게 됐다가 이번에 미국에 가서 다시 늘었다. 생활 영어는 조금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 직접 이야기하기는 조금 힘들어 통역을 쓴다. 하지만 열심히 준비하면 내년 쯤엔 더 자유롭게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어공부법이 따로 있다면?

▶달리 없다. 혼자서 떠드는 거다. 혼자 물어보고 답변하고. 시간도 장소도 따로 없다. 어떤 때는 미친 것 같이 혼자 중얼중얼 거릴 때도 있다. 나이 들어서 영어공부 하기가 쉽지 않다.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채 안됐는데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된다. 그래도 자신있게 해야지, 못한다고 쑥스럽게 하면 그게 더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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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는 스타로 정평이 나 있는데 스트레스가 상당하지 않나.

▶저는 늘 저한테 스트레스다. 아니 내가 왜 굳이 이러나. 한국에서 활동하고 영화 찍고 드라마 찍고 일본 중국 아시아를 돌고 있으면 냉정하게 따져서 돈도 많이 벌고 회사도 벌고 저도 좋고 그런데. 사실 그러면 저도 편하다. 하지만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고 한다면 시작했으니 결과가 나와야 하지 않냐고 하겠다.

사실 제게 흥행은 중요하지 않다. 워쇼스키 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고 할리우드를 접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다. 말도 안 통하는 데 가서 스태프랑도 배우랑도 이야기하면서 영화를 찍어오지 않았나. 이젠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자신감이 붙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연급 캐릭터지만 비중이 꽤 느껴진다.

▶그 전에도 할리우드 영화 출연 제의가 있었다. 야구로 따지면 마이너리그급의 주연이라고 할까. 그래도 할리우드 주연인데… 하고 있다가 '스피드 레이서'의 출연 제의가 왔다. 그때 생각했다. 마이너리그의 주연이 되기보다는 메이저리그의 조연을 하자. 어디 첫 술에 배가 부를 수 있겠나.

처음 스크립트를 받았을 땐 비중이 이것처럼 크지 않았다. 연기하면서 끈기를 보여줬다. 촬영하는 스튜디오 온도가 35∼36도가 된다. 다른 배우들은 30분 찍고 나가 쉬는데 저는 무조건 그대로 다 했다. 스키복 같은 가죽슈트를 입고 찍느라 안에 땀띠가 나는데도 '물도 필요 없다', '한국사람은 다 그렇다', '나 살빼는 중이다' 이러면서 계속했다. 도대체 쉬질 않는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또 얻어진 게 워쇼스키 감독의 차기작에서 주연이 된 거다. '스피드 레이서'가 끝날 때 쯤 내가 밥을 사겠다고 했다. 한국사람의 정서를 느껴야 한다고 베를린에서 한국 식당을 굳이 찾아서 김치랑 불고기를 시켜줬다.

그때 감독이 차기작이 있는데 액션영화라며 해보겠냐고 하더라. 주인공이 누구냐고 했더니 '유(YOU)'라고 하기에 장난치냐고 했다. 왜 나냐고 했더니 '너는 정말 열심히 하더라, 너랑 하고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다른 영화의 주연을 했다면 과연 워쇼스키와 작업을 할 수 있었겠나.

-고쳐야 한다고 지적받은 건 없었나?

▶없었다.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없었다. 사실 제가 잠을 안잤다. 밀리지 않으려고.

속으로는 언제나 '우와'를 외쳤다. 세트장에서도 '우와', 배우를 보고도 '우와', 감독을 보고도 '우와',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잘 있었어?', '맥주 한 잔 하지?' 그러고 인사하고 그랬다. 밀리지 않으려고 기싸움을 한 거다. 그러면서 내가 영어를 공부하고 있으니 어법에 안 맞더라도 도와달라고 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은 아시안을 잘 대해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다들 잘 해주더라.

-감독을 많이 보는 것 같다.

▶무대 위의 비는 자신있다. 나는 항상 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노래한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정지훈은 초짜 신인이다. 영화를 하거나 연기를 할 때는 아직도 두렵다. 배울 것이 한없이 많다.

드라마를 할 때도 영화를 할 때도 좋은 감독님 옆에 있으면 저도 모르게 다른 게 막 나온다. 좋은 프로듀서를 만나야 좋은 음악을 뽑을 수 있고, 좋은 감독을 만나야 좋은 축구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저는 매번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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