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서' 24일 개봉..새 '에바' 시대 열릴까?①

김관명 기자 / 입력 : 2008.01.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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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서'


에반게리온은 일개 소년만화의 잘 생기고 착한 그런 로봇이 아니었다. 우선 외모부터가 달랐다. 순하게 잘 생긴 그리스 조각풍의 포세이돈('바벨2세')도 아니었고, 각지고 입술 탐스러운 건담 중기 모델은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게걸스럽게 적의 시체를 파먹는, 흡혈귀 악마 내지 하이에나를 빼닮은 괴물에 가까웠다. 날카로운 이빨과 눈을 번뜩이며 에반게리온이 폭주할 때, 그건 공포 그 자체였다.

해서 안노 히데야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은 소년소녀와 로봇이 적당히 만난 일개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 정체성에 대해 늘 고민하는 소심한 14세 주인공 이카리 신지, 이런 신지를 보호하기위해 폭주-상대방을 궤멸시킨 에반게리온 초호기, 인류보완계획이라는 생소한 목적을 위해 뭉친 의뭉스러운 초국가조직 제레, 그리고 끊임없이 인류를 파멸시키려 쳐들어오는 알 수 없는 사도..분명 그전까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었던' 로봇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 '에반게리온'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더욱이 인류멸망과 인류보완계획을 운운한 '에반게리온'의 시대적 배경은 2015년. '에반게리온'이 처음 24부작 TV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한 게 소위 '세기말'이었던 1995년10월~1996년 3월이었으니, 이 애니메이션이 전해준 서늘한 공포와 충격은 2008년 현재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욱 셌다. 이어 등장한 1997년 3월의 극장판 '신세기 에반게리온:데스 앤 리버스'와 그해 7월의 극장판 2탄 '신세기 에반게리온: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안노 히데야키의 신세계에 대한 확장판이자 완결판이었다.

그로부터 10년. 그렇게 완결된 줄 알았던 에반게리온의 세계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바로 안노 히데야키가 다시 총감독을 맡은 '에반게리온: 서(序)'가 탄생한 것이다. 이미 일본에선 지난해 9월1일 개봉해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내리 8주동안 톱10에 들었다. 다시 열광한 건 일본 마니아들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이 작품이 상영됐을 때, 예매 오픈 25분만에 5000석 전석이 매진됐다.

오는 24일 국내 정식 개봉을 앞둔 '에반게리온: 서', 그리고 올해 안에 개봉할 것으로 알려진 '에반게리온: 파(破)', 이어 개봉시기 미정의 '에반게리온: 급(急)'과 최종 완결편, 이 연속되는 신극장판 애니메이션 4부작은 과연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새로운 '에바'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이미 화려한 로봇 CG로는 '트랜스포머'가, 정교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움직임으로는 픽사의 '인크레더블'이나 '라따뚜이'가 한바탕 온 지구를 휩쓸고 간 지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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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에반게리온: 데스 앤 리버스'


우선 과거 24부작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 1, 2편으로 드러난 '에반게리온'의 서사구조는 대략 이렇다. 첫째. 2000년 남극에서 거인이 발견되고, 이를 탐사하던 탐험대가 몰살당한다. 바로 이 거인이 아담이라 불린 제1사도였고, 이 거인은 제2사도와 접촉, 폭발해 인류의 반을 죽게 만든 소위 '세컨드(2nd) 임팩트'를 발생시켰다. 그러나 세상에는 운석에 의한 충돌이라고 알려졌다.

둘째. 다시 15년후. 폭발한 아담(사실은 아담의 아내 릴리스)을 옮겨놓은 일본의 한 지하기지(네르프의 지오프론트. 이 릴리스를 십자가에 고정시켜놓은 게 그 유명한 롱기누스의 창이다)에 계속해서 총 15 사도가 공격해와 끊임없이 아담(실은 릴리스)과 결합을 시도한다. 왜? 아담과 결합해, 서드(3rd) 임팩트를 만들어냄으로써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누가 이들을 보냈나? 사도(Angel)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바로 신(神)이다. 그러나 이를 신지와 요즘 말로 하면 '4차원 소녀'인 레이, 과거가 슬픈 아스카, 그리고 에반게리온 영호기, 초호기(1호기), 2호기가 모두 막아낸다.

셋째. 사도는 격퇴됐지만 이번엔 초국가조직 제레의 속셈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사실 애니메이션 내내 계속해서 제레와, 신지의 아버지인 겐도우의 꿍꿍이가 미심쩍기는 했다) 스포일러 우려 때문에 더이상 밝힐 수는 없지만 1997년 극장판 2편에서는 제레의 꿍꿍이와 신지의 활약상, 레이의 실체, 아스카의 운명, 겐도우의 야심, 이런 모든 게 까발려진다. 이 극장판까지 본 관객은 혼란스럽고 마지막 질문을 던져야 했다. 과연 신은 진정 인류를 파멸시키려고 그 '흉칙한' 사도들을 보냈던가.

그러면 이렇게 나름대로 완결된 '에반게리온'의 세계에, 안노 히데야키는 무엇을 보태려 '에반게리온: 서'를 만든 것일까. 제작진은 이번 '에반게리온: 서'를 영화의 본질은 토대로 하되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축한 '리빌드'(Rebuild)라고 명명했다. 20세기에는 기술의 한계 때문에 스크린에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들을 표현해보자는 것, 이를 위해 당시 원화와 레이아웃을 디지털 3D CG로 다시 작화해보자는 것, 그리고 2000년대 새 관객을 위해 새로운 스토리와 결말을 던져보자는 것.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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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에반게리온: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하지만 이러한 의도가 관객에게까지 먹힐지는 새 시리즈의 2, 3, 4부격인 '파'와 '급', 그리고 최종 완결편 개봉 때까지 기다려야 할 듯하다. 물론 '에반게리온: 서'가 보여준 대규모 전투신과 비주얼은 10년전보다 분명히 진화했다. 특히 정육면체 모양의 제5사도 라미엘이 일종의 인류의 방어진지인 지오프론트 장갑판을 뚫을 때 사용한 굴착봉의 모습은 확실히 달라졌다! 그리고 라미엘이 에너지를 모을 때 이리저리 변신하는 CG는 황홀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그러나 문제는 스토리다. 1997년 '에반게리온: 데스 앤 리버스'가 기존 TV 시리즈를 짜깁기했다며 일부 팬들이 크게 반발했던 것처럼, 이번 '에반게리온: 서'도 20세기 버전의 큰 줄기는 거의 달라진 게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제5사도까지 나왔으므로 TV시리즈로는 제6화까지 내용을 축약한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림이 없다(그래서 아스카가 안나온다!)

다만 마지막 인간형 사도(제17사도)인 카오루가 20세기 버전보다 훨씬 이른 타이밍에 깜짝 등장한 게 변수라면 변수일까. 결국 현재로서는 "지금 영화를 보는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에반게리온'이어야 하기 때문에 스토리는 달라질 것"이라는 안노 히데야키 감독의 말을 믿고, '파'와 '급', 그리고 최종완결판을 기다리는 수밖엔 별 도리가 없을 듯하다. 다행히 '파'와 '급'에는 새로운 에반게리온과 새로운 사도, 캐릭터들이 추가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에반게리온: 서'의 감독으로 참여한 츠루마키 카즈야('신세기 에반게리온: 데스 앤 리버스'에서는 데드 편 연출을 맡았다)는 지난해 부산영화제 당시 스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97년 극장판의 결말은 당시 안노 총감독의 세계관을 담은 것이다. 그 뒤로 10년이 지나면서 안노 감독의 세계관도 바뀌었고 세계도 바뀌었다. 확언할 수 없지만 결말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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