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송인득 아나, MBC사우들 눈물속에 영원히 잠들다

김수진 기자 / 입력 : 2007.05.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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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봉진인턴기자


"국내 스포츠계의 큰 별이 졌다."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남문광장에서 최문순 사장 등 500여 MBC 사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 23일 타계한 고 송인득 캐스터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박경추 MBC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고 송인득 캐스터의 영결식은 유족을 비롯해 MBC 전 사우들의 눈물 속에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생전 송인득 캐스터가 경기를 진행하는 생생한 모습이 공개돼 참석자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고인과 MBC 입사 동기인 성경환 아나운서 국장은 고인의 가는 길을 조사를 통해 애도했다.


성경환 국장은 "응급실에 실려간 날에도 '나 괜찮아 먼저들 들어가'라고 말했던 자네. 뭐가 그리 바빠서, 뭐가 그리 바빠서 이 계절에 갔는가"라며 비통해 했다.

성 국장은 "자네는 다른 동기들보다 어린 나이에 입사해 일찍 두각을 나타냈지. 자네를 좋아하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네.(중략) 자네가 지켜온 힘들고 외로웠던 길을 이제는 외롭지 않게 모든 사람들이 지키고 있네"라고 말하며 눈물로 애도했다.

이어 박혜진 아나운서가 스포츠국 이도형 국장의 추모시를 낭송했다.

한편 고 송인득 아나운서의 영결식은 MBC 창립 이후 다섯번째 회사장으로 치러졌다.

1982년부터 2007년까지 25년 동안 우리나라의 간판 스포츠 중계캐스터로 활동해 온 고 송인득 캐스터는 지난 10일 저녁 급성 내출혈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상태가 악화돼 23일 0시 03분 운명했다. 병명은 간경화로 인한 급성 위정맥 파열.

고인은 우리나라 최장 기간 연속 스포츠 중계방송 출장과 최장 기간 연속방송을 기록하는 등 한국 스포츠 방송 캐스터 역사의 산 증인이다.

현장 묘사에 그치는 중계방송에서 벗어나 분석과 기록 중심의 스포츠 중계방송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스포츠 중계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사격과 양궁 등의 종목에서 새로운 중계방식을 만들어내 이후 모든 방송에서 고인의 중계방식을 교본으로 삼았을 정도다.

때문에 MBC의 현직 스포츠캐스터는 물론 타 방송사의 많은 스포츠 중계 캐스터들이 송 아나운서의 경기 기록 분석과 중계방식을 하나의 교과서로 여겨왔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송 아나운서는 1982년 MBC 아나운서국에 입사해 야구, 축구, 탁구, 골프 등 구기 종목에서부터 육상, 수영, 양궁 등 여러 스포츠 중계방송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중계방송을 추구해왔으며, 벤 존슨의 약물복용 파문이 일었던 88 서울올림픽부터 한국 축구가 4강 신화를 이룩했던 2002 월드컵,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최근 2006년 독일월드컵과 도하 아시안 게임까지 대형 국제 경기에서 MBC의 간판 스포츠 캐스터로 활약해왔다.

특히 IMF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있을 때 메이저리그 박찬호 선수 중계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했으며, 2002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을 질타하며, 스포츠 중계방송을 통해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기도 했다.

2001년 한국아나운서협회 9대 회장을 역임한 고인은 2002년 아나운서국 스포츠 뉴스 부장을 지냈으며, 2006년 MBC 스포츠 중계 전문 아나운서로 보직됐고, 2007년 2월 부국장으로 승진했다.

특히 고인은 쓰러지기 전날인 9일 오후까지 제7회 전국 구간 마라톤 대회 중계방송을 2시간에 걸쳐 녹화했는데, 이 마지막 방송은 송 아나운서가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을 때 중계돼 TV로 목소리를 듣던 가족들과 동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송인득 캐스터의 유해는 경기도 파주 청아공원 납골당에 안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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