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9일', 살인사건을 둘러싼 흥미로운 진실공방

김경욱 기자 / 입력 : 2006.07.12 13:10
  • 글자크기조절
image


한 사무라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이 살인사건을 두고 제각기 다른 증언을 펼치는 4명의 관련자들. 그들은 분명 '같은' 사건을 경험하지만 각자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자신의 영화 '라쇼몽'에서 하나의 살인 사건을 통해 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아니, 그 이전에 과연 진실이 존재하는가?

HD 연작 공포영화 '어느 날 갑자기'의 첫 번째 이야기 '2월29일'(감독 정종훈ㆍ제작 CJ엔터네인먼트)의 화두 역시 '진실'이다. "영화 '라쇼몽'처럼 여 주인공과 형사가 바라보는 진실을 통해 오히려 관객들에게 묻고 싶었다"는 정종훈 감독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것이 바로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것이다.


주인공 한지연(박은혜 분)은 고속도로 톨게이트 매표원이다. 그는 차량이 뜸한 깊은 밤 피 묻은 표를 내고 가는 정체 모를 검은 차량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힌다.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톨게이트 매표소는 정전이 되고 검은 차량이 나타나 피 묻은 표를 제시한다. 같이 일하는 후배 종숙으로부터 '2월 29일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터라 지연은 불면증과 신경쇄약에 시달린다.

종숙으로부터 들은 2월29일의 저주는 12년 전 교도소 수송차량이 교통사고를 내 전원이 사망한 사건에서 시작한다. 당시 차량에 타고 있던 전원이 사망했으나 불에 타 없어진 하나의 시체. 바로 연쇄 살인범이었던 여자 사형수의 시체가 사라진 후 4년 마다 찾아오는 2월 29일 톨게이트 근처에서는 꼭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자신과 똑 같은 외모의 여자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종숙이 실제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나서는 지연과 두 형사의 진실 공방이 이 영화의 핵심 축이다.

영화는 중간중간 불쑥 등장하는 귀신의 모습과 사운드로 공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드는 스토리 라인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쩌면 영화를 보고 나서도 끈질기게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


독일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무엇을 안다는 것은 '안다고 생각하는 믿음'이고, 진리란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라고 했다. 때문에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진리라는 것도 어쩌면 공허한 '믿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중세시대 우리의 선조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진리에 의하면 당시 태양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었으니까.

영화 속 여주인공이 말하는 진실과 형사들이 보는 진실에는 이렇게 서로의 믿음이 녹아 있다. "그는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말할 뿐이다. 진실은 언제나 상대적인 거거든"이라고 말하는 영화 속 정신과 의사의 말은 어쩌면 정종훈 감독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주인공 한지연이 보는 미궁의 살인 사건의 진실과 박형사(임호 분)가 보는 진실. 이 둘 사이에서 감독은 불친절하게도(?) 선뜻 해답을 던져주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각각의 입장을 담담하게 보여 주기만 할 뿐. 어느 것 하나가 진실일 수도 어쩌면 둘 다 진실이 아닐 수도, 모두가 진실일 수도 있는 다양한 선택지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관객의 자유다.

영화 '2월29일'은 연작 공포소설 '어느날 갑자기'를 모태로한 HD공포영화 '어느날 갑자기' 4편의 연작시리즈 중 첫번째 작품. 방송사 SBS가 공동 참여해 영화 개봉과 더불어 올 여름 SBS를 통해 방송된다.

끝으로 이 영화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한 제안 하나. 혹시 언젠가 있을 2월29일 톨게이트 매표소에서 야간 근무하는 분들은 가급적 관람을 삼가시길. 검은 색 승용차에서 피 묻은 표를 내미는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오는 21일 개봉.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